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 그리고 신비주의자이기도 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중에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블레이크는 18세기 중반에 런던의 양말 공장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10대 초반에 판화가의 제자가 되면서 수많은 고전과 미술작품의 사본을 만드는 일에 참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전의 정수를 터득한 그는 기독교 신앙의 깊은 사색을 더해 신비로운 회화와 시집을 간행합니다. 독학으로 일가를 이룬 그의 수많은 회화와 시 작품은 지금도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시학과 문학, 신학을 공부하다가 그의 신비주의 회화를 보곤 현대 화가의 그림인 줄 알 정도로, 그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직관하던 중 발견한 거대한 흐름, 그리고 작은 사물 속에 담긴 우주의 본질을 깨닫는 시선은 창조적인 시인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자질에 훈련을 더한 예술가들의 시선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작은 사물에도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가 담겨있음을 깨닫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의 눈은 매우 창조적이고 예술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그분의 걸작픔으로 창조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는” 블레이크는 싯구는 “고난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하고 닫힌 세상 속의 열린 가능성을 꿈꾸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댓구를 이룹니다.
급격한 세상의 변화가 예측되는 시기입니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혼돈의 시기가 다가올 듯 합니다.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겠고, 누군가에겐 상실의 시기가 될 수 있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간 AI 급격한 발전, 미국의 새정부의 등장, 패권으로 세계의 정세를 주도하는 새로운 제국의 출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든 시대가 올 것 같아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급변의 시대에도 변화하지 않는 본질이 역사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분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복된 소식, 즉 복음이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추운 일기를 밀어내며 따뜻한 봄기운이 다가올 것입니다. 겨울의 동토가 녹을 때, 새로운 씨앗을 심게 될 것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 찾아온 청교도들도 우리와 같은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망망대해의 고단함과 배고픔을 이겨내고, 정착한 땅의 그 살인적인 추위를 이겨내고, 다시 맞이한 봄에 그들이 땅을 개간하고 뿌린 씨앗이 첫 열매를 맺게되던 때, 그들은 그 수확물로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이웃을 향한 환대의 마음을 함께 나누며 감사의 절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땅에 씨앗을 뿌리면서 그들은 그 작은 씨앗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느꼈을 것입니다. 막막한 땅의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앞으로 함께 동행하실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블레이크는 신앙을 한 마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든 것이 급변하는 혼론한 삶의 현장이지만, 봄이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심을 조그만 씨앗 속에서도 우주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가 함께 자라게 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모래속에 우주를 발견하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도 천국을 보기 원합니다. 샬롬!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 그리고 신비주의자이기도 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중에 〈순수의 전조〉(Auguries of Innocence)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블레이크는 18세기 중반에 런던의 양말 공장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10대 초반에 판화가의 제자가 되면서 수많은 고전과 미술작품의 사본을 만드는 일에 참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전의 정수를 터득한 그는 기독교 신앙의 깊은 사색을 더해 신비로운 회화와 시집을 간행합니다. 독학으로 일가를 이룬 그의 수많은 회화와 시 작품은 지금도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시학과 문학, 신학을 공부하다가 그의 신비주의 회화를 보곤 현대 화가의 그림인 줄 알 정도로, 그의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직관하던 중 발견한 거대한 흐름, 그리고 작은 사물 속에 담긴 우주의 본질을 깨닫는 시선은 창조적인 시인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한 자질에 훈련을 더한 예술가들의 시선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작은 사물에도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가 담겨있음을 깨닫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의 눈은 매우 창조적이고 예술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그분의 걸작픔으로 창조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는” 블레이크는 싯구는 “고난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하고 닫힌 세상 속의 열린 가능성을 꿈꾸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댓구를 이룹니다.
급격한 세상의 변화가 예측되는 시기입니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혼돈의 시기가 다가올 듯 합니다.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겠고, 누군가에겐 상실의 시기가 될 수 있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변화에 순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간 AI 급격한 발전, 미국의 새정부의 등장, 패권으로 세계의 정세를 주도하는 새로운 제국의 출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든 시대가 올 것 같아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급변의 시대에도 변화하지 않는 본질이 역사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분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복된 소식, 즉 복음이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추운 일기를 밀어내며 따뜻한 봄기운이 다가올 것입니다. 겨울의 동토가 녹을 때, 새로운 씨앗을 심게 될 것입니다.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신대륙에 찾아온 청교도들도 우리와 같은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망망대해의 고단함과 배고픔을 이겨내고, 정착한 땅의 그 살인적인 추위를 이겨내고, 다시 맞이한 봄에 그들이 땅을 개간하고 뿌린 씨앗이 첫 열매를 맺게되던 때, 그들은 그 수확물로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이웃을 향한 환대의 마음을 함께 나누며 감사의 절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땅에 씨앗을 뿌리면서 그들은 그 작은 씨앗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느꼈을 것입니다. 막막한 땅의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앞으로 함께 동행하실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블레이크는 신앙을 한 마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든 것이 급변하는 혼론한 삶의 현장이지만, 봄이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심을 조그만 씨앗 속에서도 우주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가 함께 자라게 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의 모래속에 우주를 발견하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도 천국을 보기 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