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영락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와 목회 현장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받아 온 분이 고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한국 전쟁 시기에 북한 지역의 민간인 학살로 악명을 떨쳤던 “서북청년단”의 정신적 리더가 바로 한경직 목사님이라고 알려지며 그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도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을 은퇴하고 내려놓으며 남한산성 계곡에 터를 잡고 은거하듯 지내셨다고 합니다. 후임자가 부담을 느낄 것을 우려해 일부러 교회와 먼 곳으로 이사를 했고, 목사인 아들과 사위에게도 일체의 지위와 권한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교계의 후배 목사님들이 모여 원로인 한경직 목사님이 살고 있는 18평의 단층집을 찾아갔습니다. “좋은 말씀 한마디 해 주세요”라며 요청하던 후배 목회자들에게 한 목사님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에게 도리어 “예수를 잘 믿으라”고 권면한 것은 세상에서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반성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방 선교의 초석을 놓은 사도 바울만큼 또한 당시의 역사에 많은 이슈와 논쟁을 낳은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2세기의 외경인 〈바울과 데클라의 행전 The Acts of Paul and Thecla〉을 보면 사도 바울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대머리, 휜 다리, 짙은 눈썹, 매부리코 등의 표현 자체가 당시 헬라 사회의 영웅적 인물에 대한 묘사와 일치하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이 성서와 성서 밖의 여러 자료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런 잘못된 시선과 오해가 바울의 평생을 따라다녔던 모양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변호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0 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은 권위를 내세울 만한 객관적 조건도 갖추고 있었고, 스스로가 정말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할만한 주관적 체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내세운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부족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약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받아들여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또 그분을 위해 살아오며 경험한 많은 간증이었을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천, 그것으로 자신의 사도직을 감당할 뿐이라는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논쟁과 다툼의 현장에서 바울이 선택한 것은 오직 예수를 잘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고 한경직 목사님의 권면이 저에게 참으로 엄위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목사로서 예수를 선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예수를 따르는 것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예수 믿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국인 한국의 정치와 미국의 정치가 극렬하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올림픽의 희망찬 소식 가운데도 여전히 세계의 한 곳에서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목회 현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전도가 어려워지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정말 저는 예수를 잘 믿고 싶습니다. 예수를 잘 따르고 싶습니다!
해방 후 영락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한국 개신교회의 역사와 목회 현장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받아 온 분이 고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지금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한국 전쟁 시기에 북한 지역의 민간인 학살로 악명을 떨쳤던 “서북청년단”의 정신적 리더가 바로 한경직 목사님이라고 알려지며 그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도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을 은퇴하고 내려놓으며 남한산성 계곡에 터를 잡고 은거하듯 지내셨다고 합니다. 후임자가 부담을 느낄 것을 우려해 일부러 교회와 먼 곳으로 이사를 했고, 목사인 아들과 사위에게도 일체의 지위와 권한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교계의 후배 목사님들이 모여 원로인 한경직 목사님이 살고 있는 18평의 단층집을 찾아갔습니다. “좋은 말씀 한마디 해 주세요”라며 요청하던 후배 목회자들에게 한 목사님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에게 도리어 “예수를 잘 믿으라”고 권면한 것은 세상에서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반성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방 선교의 초석을 놓은 사도 바울만큼 또한 당시의 역사에 많은 이슈와 논쟁을 낳은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2세기의 외경인 〈바울과 데클라의 행전 The Acts of Paul and Thecla〉을 보면 사도 바울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머리와 휜 다리에 눈썹은 서로 맞닿고 코는 매부리에 단신의 다부진 체구를 가진 호감에 찬 사나이, 그는 인간의 모습에 천사의 얼굴을 가진 자이다." 대머리, 휜 다리, 짙은 눈썹, 매부리코 등의 표현 자체가 당시 헬라 사회의 영웅적 인물에 대한 묘사와 일치하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교회가 바울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이 성서와 성서 밖의 여러 자료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런 잘못된 시선과 오해가 바울의 평생을 따라다녔던 모양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변호했을까요?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0 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은 권위를 내세울 만한 객관적 조건도 갖추고 있었고, 스스로가 정말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할만한 주관적 체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내세운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부족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약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받아들여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또 그분을 위해 살아오며 경험한 많은 간증이었을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천, 그것으로 자신의 사도직을 감당할 뿐이라는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논쟁과 다툼의 현장에서 바울이 선택한 것은 오직 예수를 잘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라는 고 한경직 목사님의 권면이 저에게 참으로 엄위한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목사로서 예수를 선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예수를 따르는 것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예수 믿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국인 한국의 정치와 미국의 정치가 극렬하게 갈라지고 있습니다. 올림픽의 희망찬 소식 가운데도 여전히 세계의 한 곳에서 전쟁의 포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목회 현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전도가 어려워지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정말 저는 예수를 잘 믿고 싶습니다. 예수를 잘 따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