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청년목회를 하며 만나게 된 청년 중 부모님과 불균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자녀들이 나중에 이성의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할 때, 인격적인 관계보다 아빠나 엄마의 역할을 대신할 대상자를 찾게 되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콤플렉스가 콤플렉스를 무의식중에 알아보고 만나는 경우입니다.
부모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으면, 자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를 아버지로 둔 딸이 아빠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에게 얻기 위해, 같은 조건의 알코올 중독자인 남자친구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역시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아들이 성인이 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배우지 못해 아내와 자녀들을 폭행하는 남편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사랑에 눈먼 단계에서 상대방의 알코올 중독이나 폭력성을 알기 힘든데도, 특히 여성들이 그런 상대를 자연스럽게 찾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같은 조건의 배우자로부터 받으려는 보상 심리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제3자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인류학자인 리처드 랭햄과 영장류 동물학자인 데일 피터슨이 쓴 〈악마 같은 남성〉이란 책은 남성의 폭력성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남성은 사회적으로 힘에 욕망을 갖도록, 그러면서 점점 폭력적이 되도록 진화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공격적인 연합을 만들어 자신들을 보호하고 집단을 수호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힘을 갖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에 더 많은 자유와 이익을 보장하기에 폭력적인 진화가 매우 유익한 전략이란 것이지요. 반대로 남성보다 물리적, 계급적으로 약한 여성은 그런 남성들과 공존하기 위해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이들은 남성의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힘이 세고 폭력적인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폭력적인 남성이 가장 훌륭한 보호자이며, 그래야 훌륭한 자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이렇게 폭력성을 강화하도록 진화해 온 과정의 일정 부분에 여성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인류학이 설명하는 이런 진화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정신적 독립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시에 ‘홀로서기’가 심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홀로 서지 못할 때 정서적으로 종속-의존의 관계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법을 인생에서 배우지 못하면, 나이 들어도 여전히 내 안에 어린아이를 품고 사는 ‘성인 아이’가 되어 사실에 대한 미숙한 판단과 관계 안에 철없는 표현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홀로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은 자신의 절대적인 한계를 자각하고 신의 주권 앞에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어릴 때 상처받은 경험으로 품어왔던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정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능력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받아들여진 경험 가운데 시작됩니다. 이렇게 신앙의 ‘홀로서기’를 못하면 교회 다니는 것도, 다른 이들과 관계 맺고 사는 것도 대단히 의존적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대단히 독선적인 성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환대하고, 반대로 멀어지는 사람도 축복해 줄 수 있는 자비와 관용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민 목회를 오래 할수록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것 같다”는 생각을 불현듯 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매우 넓게 형성해온 많은 인맥도,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되어버려 리더의 자리에만 서 있었던 나의 경험도,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했던 나의 학문적 배경도, 이제 나의 미래를 보장할 만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것도 나를 도울 수 없는 고립무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가 절망적인 시기가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홀로서기’를 배우는 때임을 50의 나이가 넘어서야 깨닫게 됩니다. 샬롬!
한국에서 청년목회를 하며 만나게 된 청년 중 부모님과 불균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자녀들이 나중에 이성의 친구를 사귀거나 결혼할 때, 인격적인 관계보다 아빠나 엄마의 역할을 대신할 대상자를 찾게 되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콤플렉스가 콤플렉스를 무의식중에 알아보고 만나는 경우입니다.
부모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으면, 자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를 아버지로 둔 딸이 아빠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에게 얻기 위해, 같은 조건의 알코올 중독자인 남자친구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역시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아들이 성인이 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배우지 못해 아내와 자녀들을 폭행하는 남편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사랑에 눈먼 단계에서 상대방의 알코올 중독이나 폭력성을 알기 힘든데도, 특히 여성들이 그런 상대를 자연스럽게 찾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같은 조건의 배우자로부터 받으려는 보상 심리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제3자의 눈에는 너무나 선명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인류학자인 리처드 랭햄과 영장류 동물학자인 데일 피터슨이 쓴 〈악마 같은 남성〉이란 책은 남성의 폭력성을 인류학적으로 고찰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남성은 사회적으로 힘에 욕망을 갖도록, 그러면서 점점 폭력적이 되도록 진화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공격적인 연합을 만들어 자신들을 보호하고 집단을 수호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힘을 갖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에 더 많은 자유와 이익을 보장하기에 폭력적인 진화가 매우 유익한 전략이란 것이지요. 반대로 남성보다 물리적, 계급적으로 약한 여성은 그런 남성들과 공존하기 위해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질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이들은 남성의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힘이 세고 폭력적인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폭력적인 남성이 가장 훌륭한 보호자이며, 그래야 훌륭한 자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이렇게 폭력성을 강화하도록 진화해 온 과정의 일정 부분에 여성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인류학이 설명하는 이런 진화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정신적 독립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시에 ‘홀로서기’가 심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홀로 서지 못할 때 정서적으로 종속-의존의 관계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법을 인생에서 배우지 못하면, 나이 들어도 여전히 내 안에 어린아이를 품고 사는 ‘성인 아이’가 되어 사실에 대한 미숙한 판단과 관계 안에 철없는 표현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홀로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은 자신의 절대적인 한계를 자각하고 신의 주권 앞에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어릴 때 상처받은 경험으로 품어왔던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정하고 감싸 안을 수 있는 능력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받아들여진 경험 가운데 시작됩니다. 이렇게 신앙의 ‘홀로서기’를 못하면 교회 다니는 것도, 다른 이들과 관계 맺고 사는 것도 대단히 의존적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대단히 독선적인 성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환대하고, 반대로 멀어지는 사람도 축복해 줄 수 있는 자비와 관용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민 목회를 오래 할수록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것 같다”는 생각을 불현듯 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매우 넓게 형성해온 많은 인맥도,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되어버려 리더의 자리에만 서 있었던 나의 경험도,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했던 나의 학문적 배경도, 이제 나의 미래를 보장할 만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것도 나를 도울 수 없는 고립무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때가 절망적인 시기가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홀로서기’를 배우는 때임을 50의 나이가 넘어서야 깨닫게 됩니다. 샬롬!